나무는 어떻게 계절을 알아차릴까? 앞으로도 문제는 없을까?

습하고 더운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어서 빨리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앞서는 한여름의 아침이다. 막상 가을이 오면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해가 짧아진다고. 밤이 길어지면서 겨울을 준비하는 나뭇잎의 색이 변해간다고.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것을 우리는 몸으로 알게 되듯 나무 역시 몸으로 느끼며 겨울을 준비한다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무는 빛을 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나무의 세포 속 계절을 감지하는 센서는 빛이 아니라 빛이 없는 어둠의 시간을 재는 피토크롬(Phytochrome)이라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은 적색광을 흡수하면 빠르고 급하게 활성화(Pfr) 되었다가 어둠 속에서는 서서히 시간에 비례하여 다시 비활성화(Pr)로 돌아간다. 모래시계를 되돌려놓듯 그렇게 비활성화된 시간의 축적을, 어둠이 얼마나 오래 지속이 되었는지를 정밀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나무에게 시간의 변화는 어둠이 차오르는 사건인 것이다.

여기에 나무의 잎에는 대략 24시간을 주기로 스스로 진동하는 유전자 발현 리듬의 생체시계(circadian clock)가 있다. 그 시계는 하루 중 특정한 시각을 ‘빛에 민감한 시간’으로 미리 정해두고 그 시각에 피토크롬의 상태와 대조한다. 그 대조가 맞으면 낮이 충분히 길다는 것이고 어긋나면 밤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무는 무언가를 예측하지 않는다. 미래의 날씨를 가늠하거나 다가올 겨울의 혹독함을 판단하지 않는다. 나무는 그저 생체시계의 기준과 지금을 맞춰볼 뿐이다. 판단이 아니라 대조하고 해석이 아니라 일치 여부를 확인할 뿐이다. 나무는 겨울을 예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어긋남을 감지할 뿐이다.

전색소체가 빛이 있는 곳에 있었는지(엽록체) 아닌지(백색체)에 따라 정체성이 결정된다고 했다. 그런데 광주기성에서 임계점이 되는 밤의 길이는 이미 그 나무의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고 그 기준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의 생명체 안에 우연으로 결정되는 정체성과 이미 결정되어 결코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이 함께 있는 것이다.

최근 이 오래된 시계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지구의 자전축과 공전 궤도가 그대로인 한 광주기는 변하지 않는다. 특정한 날, 밤의 길이는 수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확히 같다. 오랫동안 이 둘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척도였다. 밤이 길어지면 기온이 떨어졌고 그래서 나무는 밤의 길이만 알아도 충분했다. 그러나 기온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늦가을의 이상 기온 속에서 나무는 서로 모순된 두 신호를 동시에 받는다, 어둠은 겨울이 왔다고 말하고 온도는 아직 아니라고 말한다. 가장 오래되고 정확한 시계가 쓸모없게 되고 있는 것이다.

나무는 지금도 어둠의 숫자를 세고 있다. 정확하게 흔들림 없이 수만 년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런데 그 셈이 더 이상 계절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나무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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