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멍해진 머리를 창문에 들이밀어 밖을 봤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렸다.
한 아이 가방의 작은 인형은 피노키오처럼 보였다.
소년이 되고 싶었던 피노키오.
피노키오를 살아 움직이게 만들면서 파란 천사가 말했다.
용감하고, 이기적이지 않으면서 진실되게 살면 진짜 소년이 될 거라고.
그러려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피노키오는 질문한다.
옳고 그름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파란 천사는 귀뚜라미 지미니 크리켓에게 피노키오의 양심이 되어 달라 부탁한다.
나무 인형인 피노키오는 양심이 없어서.
온 힘을 다해 소리쳐도 쉽게 무시당하고, 너무 작아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그런 목소리를 가진 지미니 크리켓.
모두가 잠들기 시작한 어둑한 밤 11시경, 두 다리는 후들거리고, 쥐약을 잡은 손은 몹시도 떨리고 있었다.
그날 아침, 내 공책을 발기발기 찢어버렸던 그 녀석에게 복수심으로 불탔던 나는, 녀석의 닭장 마름모 철장 틈새로 손을 넣어 모이통에 쥐약을 떨어트렸다.
그 일을 저지른 초등학교 5학년.
그날 밤부터 닭은 밤마다 꿈속에서 나를 쫓아다녔고, 그렇게 좋아하던 닭고기를 한동안 입에 대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지미니 크리켓은 수시로 남몰래 죽인 닭을 어디서든 살려냈다.
길을 걷다 닭이 보이면 흠칫 놀라 도망쳤고 꿈에선 어디선가 날아온 닭이 밤새 나를 쪼아댔다.
수업 중에 선생님은 분필이 닭이 되는 마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 목소리가 언제 조용해졌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마 처음엔 사소한 데서 시작됐을 것이다.
남의 것을 슬쩍 가져다 쓰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스스로 다독였던 어느 밤.
한 번, 두 번, 그 목소리를 무시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무시했던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순간들이 쌓였을 것이다.
지미니 크리켓은 사라진 게 아니라, 아마 내가 듣지 않기로 선택한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 양심은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의 자아가 되었다.
받은 교육과 각자가 처한 환경, 그곳에서 체득된 경험으로 빚어진 자아.
그것으로 모든 현상과 옳고 그름을 스스럼없이 판단하고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주관적인 가치판단과 자기 확신만이 있다.
자신을 위하는 것이 옳고, 그 외 모든 것은 부정되는 자신과의 대화가 없는 상태.
그래서 부끄럼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고, 가볍게 자기 합리화해서 내적 고통이 없는 상태.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내 안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쥐약을 흘려 넣던 손의 떨림은 남아 있는지,
아니면 그 떨림조차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인지.
나무 인형은 대답이 없고, 아이들의 재잘거림만 계속되었다.

#로마 콜로세오역 근처에서, 피노키오 인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