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의 안쪽, 이미 반쯤을 차지하고 있는 균근 이야기

뿌리 안쪽, 현미경을 들이밀어 뿌리 세포 하나하나에 낯선 균사가 나뭇가지처럼 뻗어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이상한 배신감 같은 것이 들 것이다. 우리가 ‘그 나무’라고 부르며 그늘에 앉아 쉬던 존재의 뿌리 안쪽이, 이미 반쯤은 다른 생물(균근)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균근의 두가지 결합 방식

균근이 나무와 결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외생균근균는 뿌리 표면을 두꺼운 균사 외투(균투, mantle)로 감싸고 피층 세포 사이 틈(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않음)으로 파고들어 그물 구조(하티그망, Hartignet)를 만든다. 이 외투가 사실상 뿌리의 흡수 기능을 통째로 넘겨받는다. 그래서 소나무, 참나무, 자작나무 같은 나무들은 발달 과정에서 뿌리털을 스스로 퇴화시킨다. 균사가 흡수 표면을 넓혀주고 있으니, 굳이 자기 것을 따로 만들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반면 내생균근균은 균사가 뿌리(피층) 세포 안으로 곧장 들어가 나뭇가지 모양(균지)의 수지상체(AM)를 만든다. 뿌리 표면은 균사 외투 없이 그대로 흙에 노출되니, 뿌리털은 그대로 균사와 나란히 제 역할을 계속한다.

이 두 방식의 구조적 차이는 확연하다. 하나는 자신의 표면을 통째로 내주고 그 대가로 기능의 대부분을 위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겉은 유지한 채 안쪽으로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관계다. 표면을 내준 쪽은 더 많은 것을 위임했지만 뿌리 자체는 단순해졌고, 속까지 내준 쪽은 겉으로는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세포 안쪽까지 낯선 존재를 들인 것이다.

생리적 차이로 보면 외생균근은 척박하고 유기물이 쌓인 토양에서 질소와 인 흡수 효율이 높고, 죽은 유기물에 갇힌 양분까지 끌어낼 수 있지만, 두꺼운 균투를 유지하는데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의 상당 부분(약 10~20%)을 지급해야 한다. 그에 비해 내생균근은 구조가 가벼운 만큼 유지 비용이 낮지만, 흡수 성능 역시 낮다. 즉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다. 나무가 처한 환경과 감당할 수 있는 비용에 따라 선택하는 것에 가깝다.

균근은 환경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나무에 균근은 선택의 문제일까? 아니면 뿌리를 내리는 순간부터 마주치게 되는 환경 그 자체일까? 균근의 밀도를 생각하면 후자 쪽이 맞겠다. 흙 한 줌에도 균사가 수십 미터씩 얽혀 있다고 하니 뿌리가 흙에 닿는 순간 균사를 피하기는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접촉이 결합을 뜻하지는 않는다. 인이 풍부한 토양에서는 균근과의 결합을 피하고 스스로 인산을 흡수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균사가 신호를 보내고 문 앞에 와 있어도, 필요하면 뿌리는 문을 걸어 잠근다. 선택권은 나무에 있고 외생균근과 내생균근 중에 하나를 또는 두 가지를 동시에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 균근의 범주는 나무에 국한되지 않는다, 육상식물 전체의 약 80%, 식물 전체적으로 92% 이상이 균근과 관계한다. 나무뿐만 아니라 벼, 밀 같은 작물에서 잔디, 심지어 이끼류, 고사리류까지 포함된다. 균근과의 공생 자체는 약 4억 년 전 식물이 육상으로 진출할 무렵부터 시작된 관계로 나무라는 형태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로 추정된다.

결합은 운명이면서 동시에 매 순간 갱신되는 선택

균사는 공기처럼 땅속 어디나 있지만, 나무는 그것을 들이마실지, 얼마나 들이마실지, 혹은 마시지 않을지 매 순간 선택한다고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과 선택하는 것 사이에 명확한 경계는 보이지 않는다. 결합은 운명이면서 동시에 매 순간 갱신되는 선택이고, 서로를 지우지 않은 채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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