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가뭄이 든 한여름, 앱시스산(ABA)이라는 이름의 호르몬이 뿌리끝 백색체(전색소체)에서 만들어져 줄기를 타고 올라가 잎에 다다른다. 그 호르몬의 명령에 따라 수백만 개의 작은 기공은 일제히 문을 닫는다.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는 수분을 아끼기 위해서다. 이 과정은 동물이 위협 앞에서 코르티솔(cortisol)을 분비하는 과정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위협을 감지하고 신호를 전신에 퍼트리고, 몸의 상태를 바꾼다. 다른 것은 단 하나 그 반응의 끝에 그것을 겪는 자가 있는지 없는지다.
파리지옥의 감각모를 건드리면 잎 전체에 전기신호가 순식간에 퍼진다. 호르몬이 세포막을 넘나들며 퍼지는 파동은 동물의 신경 신호와 호르몬의 종류만 다를 뿐, 원리는 같다. 초식동물에 잎을 뜯긴 나무는 자스몬산이라는 휘발성 물질을 공기 중에 내보낸다. 옆에 있는 다른 나무가 그 냄새를 감지하면 즉시 방어 물질을 준비한다.
나이테라는 일기장
나무는 이 모든 사건을 몸속에 새긴다. 그 해의 나이테는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한다. 폭이 좁으면 스트레스의 해, 넓으면 순조로운 해, 셀룰로이드에 남은 탄소와 산소의 동위원소 비율은 그해 기공이 얼마나 열려있었는지, 비가 어느 계절에 많았는지 알려준다. 기록은 정밀하다. 그런데 그 기록에는 결정적으로 빠진 것이 있다. 나무가 그 사건을 어떻게 꺾었는지, 심재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변재가 심재로 바뀌는 순간 살았던 세포는 죽고 타일로시스(Tylosis)가 관을 막고, 그 안에 있었을지도 모를 무언가는 조직과 함께 화학적으로 봉인된다. 일기를 썼는데 내용은 없고 표지의 두께만 남긴 것과 같다.
나무는 뇌가 없다.
나무는 뇌가 없다. 정교한 반응의 사슬 끝에 그것을 느끼고 판단하는 주체. 중앙에서 신호를 통합하고 판단하는 구조가 없으므로, 나무는 결국 뿌리와 줄기와 잎으로 분화된 진핵세포의 집합체일 뿐이라고, 이 문장은 안심이 된다.
통합에는 반드시 중앙이 필요한가?
그 안심의 전제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려면 중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어의 신경세포는 삼분의 이가 팔에 흩어져 있어서 팔마다 따로 판단한다. 개미 군집에는 지휘하는 별도의 개체가 없지만 군집 전체는 정교한 집단 행동을 한다. 통합에는 반드시 중앙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무의 뿌리에서 잎으로, 잎에서 뿌리로 오가는 화학 신경망이, 아주 느리고 흐릿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겪고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지울 수 있을까?
겪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도망칠 수 없는 겪음이다. 벌레가 잎을 뜯고 있는 동안, 뿌리가 마르는 동안, 화학물질을 내보내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계속되는 겪음. 비명을 지를 성대도, 몸을 돌려 피할 근육도 없다. 물론, 이 상상은 어떤 과학적 근거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기각할 근거도 지금은 없다.
숲을 걷다가, 나무 둥치에 손을 댄다. 그는 아마도 바위에 손을 대었을 경우와는 다른 무언가와 접촉했다고 느낄 것이다. 그 손아래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흐름이 무엇이든 간에

#식물 호르몬의 종류와 기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