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문화원을 지나 마을 언덕길을 조금 오르면 마을 중앙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가 있다. 청학동 느티나무를 찾은 그날의 오후는 유난히 맑은 가을 하늘을 가진 날이었다. 나무의 하늘로 뻗은 줄기에 푸른 가을을 녹여 짙은 녹음을 머금은 이파리에 눈이 부셨고, 가을바람에 실린 나무의 청량함이 피부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 나무 앞에서 생기를 느낀다는 것은 나무를 조사하며 500여 년을 견뎌온 나무라는 사실 앞에서 얼마나 생경한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구멍
연수구가 펴낸 스토리텔링 자료에 의하면 1990년대, 이 느티나무 줄기에는 어른 다섯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다. 나무의 구멍은 병명처럼 들리지만 줄기 한가운데 심재는 이미 죽은 조직이다. 나무가 몸을 지탱하고 살아있는 부분은 바깥쪽의 얇은 층 즉, 물과 양분이 오가는 형성층 근처뿐이다. 이 구조 덕분에 나무는 속이 비어도 살아간다. 가운데가 썩는다고 곧 죽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나무의 장점이자 약점일 수 있다.
그러니 구멍이 컸다는 사실만으로 나무가 위독했다고 말할 수 없다. 위독했는지 여부는 남은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구멍이 계속 넓어지고 있었는지에 달려있다. 자료에는 구멍이 점점 커졌고, 주변에 집이 들어서면서 나무가 쇠약해졌다고 적혀있다.
사람의 집
여기서 더 오래 붙잡게 되는 쪽은 구멍이 아니라 주변의 집이다. 2013년도로 추정되는 사진에서 나무 주변으로 집들이 가까이 지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에서 추정되듯 이미 오래전부터 나무 주변으로 주택이 지어져 있었으며 집들이 증축되거나 확장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나무 주변으로 건물이 들어서고 바닥이 다져지거나 포장이 되면 나무의 공간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흙 속의 공기와 물의 통로도 함께 사라진다. 나무는 그렇게 하나씩 잃었을 것이다. 지상의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코나카스테
느티나무 같은 낙엽활엽수는 뿌리가 깊게 내려가기보다는 얕고 넓게 퍼진다. 가는 뿌리 대부분은 표층에 있고, 그 범위는 가지가 펼쳐진 폭을 훌쩍 넘는다. 이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얼마 전 베트남 호찌민시의 통일궁 정원(수목번호 F-43)에서 확인했다. 이 나무는 열대 수종인 코나카스테(Enterolobium cyclocarpum – Guanacaste, elephant-ear tree)라는 나무로 열매 꼬투리가 사람 귀처럼 둥글게 말려진다고 ‘원숭이 귀’ 나무라고도 불리는 나무로 드러난 뿌리가 땅속 사정을 직관적으로 짐작하게 했다,

# 2013년대 청학동 느티나무 / 베트남 호찌민시 통일궁 정원의 코나카스테(F-43)
느티나무 할아버지
자료에 따르면 주민들은 나무 주변에 건축물을 철거했다. 철거는 누군가의 집을 없애는 일이다. 누구의 집이었는지, 보상이 있었는지, 그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지 글쓴이는 아직 모른다. 다만 ‘마을이 나무를 위해 집을 내주었다’라는 것은 자료에 따르면 사실이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느티나무 할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호칭은 나무에 해준 일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해준 일을 정당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할아버지를 모시려고 누군가의 집을 허물었다고. 생기가 생경했던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오백 년의 시간만이 아니라, 비워졌던 집들과 함께 서 있는 나무라는 것을 그날은 보지 못했다.

#인천 청학동 느티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