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자라는 방법(유한/무한, 고정/자유생장)

나무가 자란다는 것은 단순히 줄기가 자라는 것처럼 생각되기 쉽지만, 정확히 말하면 눈(bud)이 줄기를 덧붙이는 방식이다. 쉬운 예로 지상 2미터 높이에 박아 둔 못은 나무가 수십 년을 자라도 2미터에 그대로 있다. 이유는 한 해 자란 가지의 마디 사이는 생장이 끝나는 순간 길이가 고정되기 때문이다. 그 뒤로 그 부분이 하는 일은 굵어지는 것뿐이다. 길이는 눈이, 굵기는 형성층이 맡는다. 이 분업을 알면 수목생리학의 헷갈리는 네 개의 용어, 유한생장과 무한생장, 고정생장과 자유생장은 결국 같은 질문의 두 갈래가 된다.

1. 눈의 운명: 유한과 무한

첫 번째 갈래는 눈 자체의 운명이다. 가지 끝의 눈, 곧 정아가 계속 살아남는가.

유한생장 수종은 정아가 주지의 맨 끝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줄기 생장을 이끈다. 소나무류, 참나무류, 가문비나무류, 주목이 그렇다. 그 눈은 해마다 겨울을 나고(겨울을 나는 눈을 동아라고 부름) 봄이면 다시 길을 잇는다. 만약 그 눈이 잘리거나 죽으면 그 역할을 아래의 측아가 역할을 이어받지만, 이는 사고가 났을 때의 반응이다. 이어받을 살아있는 눈이 없다면 그 가지는 그 자리에서 멈춘다.

무한생장 수종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아가 꽃이 되어 사라지거나, 가지 끝이 죽거나, 애초에 정아를 만들지 않는다. 가을 늦게까지 자라다 추위에 가지 끝이 얼어 죽으면, 맨 위에 남은 측아가 정아의 역할을 넘겨받아 이듬해 봄에 다시 길을 낸다. 자작나무, 서어나무, 버드나무, 버즘나무 등이 그렇다. 이름은 ‘무한’이지만 끝없이 자란다는 것이 아니라,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매번 다른 눈이 이어받는다는 뜻에 가깝다.

2. 눈 속의 분량(원기): 고정과 자유

두 번째 갈래는 눈이 가진 분량을 말한다. 그해 자랄 내용물(줄기, 잎)이 언제 준비되는가.

눈 속에는 마디와 잎이 아주 작게 눌려 포개져 있다. 이것이 원기다. 에너지가 아니라 다음 해 자랄 줄기의 압축된 축소판이다. 봄이 되면 그 마디 사이의 세포들이 길게 늘어나며 간격이 벌어진다. 접이식 낚싯대에 비유하면 접힌 상태가 원기이고 펼쳐진 길이가 그해 줄기가 된다. 펼칠 때 드는 힘은 저장해 둔 양분이다. 이삿짐에 비유하면 전년도에 미리 싸 둔 박스가 원기라 할 수 있다.

고정생장 수종은 전년도에 싸둔 박스를 봄에만 푼다. 박스가 다 풀리면 그 해 줄기 생장은 끝난다. 양분이 떨어져 멈춘 것이 아니라 싸둔 분량을 다 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에 일찍 생장을 멈추고, 줄기의 마디 하나씩 해마다 쌓인다. 그래서 소나무와 잣나무는 마디 수로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줄기 생장이 끝나면 눈이 다시 다음해의 박스를 싸기 시작한다.

자유생장 수종은 봄에 미리 싸 둔 박스를 풀고 나서도, 여름 내내 새 박스를 싸고 바로 푼다. 그래서 가을 늦게까지 줄기가 자라고, 봄 잎과 여름 잎이 다른 잎이 생기기도 한다. 느티나무와 단풍나무가 그렇다. 한 해에 마디가 여러 번 생기니 마디 수로 나이를 셀 수 없다.

3. 두 갈래가 만나는 자리

두 기준은 서로 독립이라 이론상 네 칸이 나온다.

 고정생장자유생장
유한생장소나무, 잣나무, 가문비나무 등, 침엽수 대부분. 참나무류어린 가문비 묘목단풍나무(추정)
무한생장확인된 수종 없음버드나무, 버즘나무, 자작나무

소나무와 참나무류는 유한이면서 고정인, 가장 뚜렷한 유형이다. 이 수종들이 두 쌍의 용어를 같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정아가 살아 있다는 것(유한)과 준비된 분량만 쓴다는 것(고정)은 서로 다른 사실이다. 한쪽은 눈의 생사에 관한 이야기이고, 다른 쪽은 눈 속 분량에 관한 이야기다.

4. 나이에 따라 바뀌는 분류

나무를 한 칸에 못 박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같은 나무도 시기에 따라 방식이 바뀐다. 가문비나무는 고정생장 수종이지만 어린 묘목 시절에는 자유생장을 보이고, 은행나무와 포플러류는 어릴 때 자유생장을 하다가 노령기에는 거의 고정생장으로 돌아선다. 어린 나무는 서둘러 자라고, 늙은 나무는 준비된 만큼만 쓴다. 분류표는 나무의 일생에서 한 장면을 찍은 것에 가깝다.

약속의 총합

눈은 미리 싸둔 분량을 펼치기도 하고, 자라는 도중에 새 분량을 싸기도 한다. 한 눈이 끝까지 길을 이어 가기도 하고, 눈이 꺾이면 아래의 눈이 이어받기도 한다. 나무의 키는 한 번에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눈들이 해마다 이듬해를 약속하고 그 약속을 이어받으며 달여온 이어달리기의 총합이다.

#정아(bud)의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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