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벽, 살아서 쌓는 마지막 노동

일차벽에는 셀룰로스보다 헤미셀룰로스가 많고, 이차벽에는 그와 반대로 셀룰로스가 많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이 질문으로 시작했다. 일차벽은 살아있는 세포에서 처음 만들어진 벽이다. 살아 있으므로 세포는 커져야 하고 그에 따라 벽이 늘어나야 한다. 이때 셀룰로스 미세섬유는 결정성이 높이 거의 늘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헤미셀룰로스는 늘어나는 셀룰로스인가?

헤미셀룰로스는

헤미셀룰로스는 하나의 화합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β-1,4결합의 주사슬에 여러 종류의 단당류가 곁가지로 매달린 다당류들(자일로글루칸(Xyloglucan), 자일란(Xylan), 글루코만난(Glucomannan) 등 그 외 다수)의 집합이다. 주사슬에는 글루코스(glucose), 자일로스(Xylose), 만노스(mannose) 등 단당류가 사용되고 거기에 갈락토스(galactose)나 아라비노스(Arabinose) 같은 단당류가 곁가지로 불규칙하게 붙는다. 여기서 핵심은 불규칙함에 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구조는 결정화되어 단단해지지만, 불규칙한 구조는 무정형으로 남는다. 즉, 무정형으로 남은 구조에서는 미세섬유들이 서로 미끄러지거나 벽 전체가 늘어날 수 있게 된다. 세포가 자라는데 필요한 느슨함이 헤미셀룰로스인 것이다.

벽을 완성하는 것이 죽음의 조건

이차벽은 세포의 죽음의 결과일까. 여기에는 불편한 사실이 있다. 이차벽의 합성 자체는 죽음의 결과가 아니라, 죽음에 앞선, 살아있는 세포의 노동이 들어있었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원형질막에 세포 바깥쪽으로 셀룰로스 사슬을 뽑아내는 방적 기계(셀룰로스 신타제 복합체)를 설치하고, 리그닌 전구물질을 합성해 벽 틈새에 셀룰로스와 함께 자신이 갇히게 될 구조물을 층층이 두껍게 쌓아간다. 이 노동이 끝나야 비로소 세포는 스스로 죽는다. 죽음이 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벽을 완성하는 것이 죽음의 조건이 된다. 도관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관을 자신이 설계하고 쌓아 올리는 일의 결과인 것이다.

노동을 끝마친 자리

성장은 유연함이고 죽음은 견고함이며, 살아있는 동안의 노동이 결국 자기의 정지 상태를 완성한다는 것으로 깔끔하게 맺고 싶으나, 이차벽을 가지고 살아있는 체관부 섬유나 저장조직이 있는 것을 보면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 견고함이 반드시 정지를 뜻하지 않고, 유연함이 반드시 지속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무의 뻑뻑한 목질부는, 스스로 자신을 가둘 벽을 쌓는 노동을 이미 끝마친 자리였다는 것.

#수목의 탄수화물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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