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수가 적어졌다.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런데,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말도 많아야 할 것 같은데.
말은 적어진다? 맞는 말인가?
1
어제 김훈의 장편소설 ‘개’를 다시 꺼내 읽었다.
소설에서는 개의 시각으로 내밀한 백성의 삶과 개 자신의 정서적인 감정이 사람의 언어로 진솔하게 서술되어 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먹먹한 고향 바다 냄새가 밀물이 되어 밀려왔다.
소설에서는 개가 내는 소리를 ‘우우우, 컹컹컹’하고 운다고 표현했다.
결코 개의 말이라고 하지 않았다.
개의 으르렁거림과 울음소리는 개의 감정이 자연 그대로 표출된 소리일 뿐이고,
사람만이 기호화되고 조직적인 언어를 사용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각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를 누구나 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기가 자라고 어느 순간 내뱉기 시작하는 단어들과 매일매일 단어 조합이 늘어
폭풍 성장하는 아이들의 기발한 말과 결합에 놀랐던 경험은 쉽게 접하는 사실이다.
이는 그렇게 가르쳐서 된 것이 아니고 스스로 창의력을 발했다는 것을 보면,
선천적으로 타고났다고 볼 수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3
말을 요약한다면 ‘말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 사람의 소리다.’라고 할 것이다.
생각과 감정을 굴러다니는 돌에 하지 않는 이유는 듣는 이가 있어야 하는,
즉 들어주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고, 한마디로 의사소통 도구라 할 수 있다.
상대방이 있어야 말이 되는 이유는 소통하기 위함이기 때문이고,
소통하면 공감이라는 감정이 생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말을 잘하고 있나?
말은 소리인데, 말이 사라지고 디지털화해 버렸다.
엄연히 말과 글은 다른 것인데, 감정이 사라진, 디지털화된 말은 카톡이 되고, 메시지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감정은 느낌이고 감각인 것을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이 대신해 버린 웃지 못할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넘쳐나는 미디어에 대해 말의 정의에서 다시 따져 본다면,
우리는 말이 아니라 정보라는 소리의 홍수 속에 치여 살고 있구나 싶고,
그러다 보니 공감을 찾는답시고 드라마, 방송, 유튜브에 자신을 꿰어맞추어 놓고는 부족한 공감 욕망을 채우고 있다는 생
각에 미치니 답답할 지경인데.
4
누군가 어젯밤 TV에서 본 맛집 얘기를 하면서 정말 먹고 싶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친구의 친구가 음식점을 했는데 망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밥맛이 없다며 컵라면이나 먹어야겠다고 하고
뜬금없는 자신들만의 말만 쏟아내고 있는 자리에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한마디하고는 입을 닫고 말았다.
5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부끄러워졌다.
한창 일하고 말이 많았을 때,
말하지 않으면 진 것 같은 기분에, 내가 가진 생각을 기어이 말해야 했고,
내 주장을 굽히지 않고 우기고, 수시로 상대방 말을 끊어 버렸던 과거.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했는데, 핑계를 대고, 죽어도 모른다는 말은 하지 않았던 과거.
자랑질하고, 허풍 떨고, 그렇게 못났던 과거.
6
잘 듣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기주장과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 하고,
잘 듣겠다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며,
상대방의 말뜻을 알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하는,
인격 수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7
들으면서 내 경험으로 판단하고 내 경험을 앞세워 말하지 않아야 한다.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면.
8
말수가 적어진 것은
늦게나마 깨달은 말의 소중함 때문이고
팬데믹으로 인한 세상의 변화 또한 한몫한 것 같고
이 한마디가 나를 때렸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 -비트켄슈타인-

#필리핀 벤캡(Bancan) 박물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