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인 누구에게나 나무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본다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킬 것이다. 뿌리를 내리고, 땅속에서 무언가를 빨아올려 몸을 불린다는 그림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17세기 유럽의 한 화학자(얀 밥티스트 반 헬몬트)는 화분에 흙 90kg를 담고 버드나무 묘목을 심은 뒤 5년간 물만 주었다. 이후 나무는 수십 킬로그램으로 불어났는데 흙의 무게는 거의 그대로였다. 헬몬드는 결론 내리기를 ‘나무는 흙이 아니라 물로 만들어진다.
나무의 몸을 원소 단위로 분해해 보면 탄소가 약 50%, 산소가 40% 이상, 수소가 6% 정도 차지한다. 땅에서 뿌리가 길어 올린 질소(N)와 인(P)과 칼륨(K), 기타 필수 미량 무기질은 전부 합쳐도 1%를 넘지 않는다. 결국 나무의 몸은 거의 전부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올라온 물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잎에서 빛을 받아 물 분자가 쪼개지며 전자와 수소이온이 이산화탄소를 환원시켜 당을 만들고, 그 당이 셀룰로이드와 리그닌으로 중합되며 줄기와 뿌리의 몸체를 만든다. 뿌리가 그토록 부지런히 땅을 파고드는 동안, 정작 몸을 만드는 재료는 공기와 물이 만나 위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결국 헬몬드는 절반만 옳았다.
그렇다고 뿌리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표면적을 극적으로 늘린 뿌리 표피세포에서 자란 어린 뿌리털이 물을 집중적으로 흡수하고 흙 속 무기이온(질소, 인, 칼륨, 칼슘, 마그네슘, 철 등)은 대체로 희박하고 형태가 불안정해서 에너지(ATP)를 써가며 밀어 넣어 흡수한다. 즉, 뿌리는 몸을 만드는 재료를 수집하는 기관이라기보다 몸을 만드는 기계를 위한 촉매(무기이온)제를 구하는 기관에 가깝다. 뿌리는 땅속에서 무기염의 만성적인 결핍과 고갈대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그 일은 뿌리 혼자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나무에서 필수적인 인(P), 질소(암모늄태-HN4+)의 흡수는 균근과의 공생으로 얻는다. 균근은 무기염과 물을 대신 흡수해 넘겨주고 그 대가로 나무로부터 잎에서 만든 당을 얻는다. (뿌리는 물과 무기염 흡수의 선택적 여과장치(카스파리대) 외에 나무를 물리적으로 고정시키는 앵커 역할과 탄수화물의 창고 역할, 시토키닌과 같은 식물호르몬 생성을 하는 화학공장 역할 등이 있다)

우리는 근원을 눈에 보이는 것에 두고 싶어 한다. 실체가 있어야 안심이 되고, 정체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나무에 몸을 준 것은 뿌리가 움켜쥔 흙이 아니라 잎이 붙잡았던 떠다니는 공기다. 나무가 서 있는 그 자리의 흙이 나무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태어난 자리, 물려받은 이름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어쩌면 같은 종류의 착시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