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녹색으로 보이는가?
창밖을 보면 초록의 나무가 먼저 보일 것이고, 지구를 우주에서 내려다본다면 초록이 도드라져 보일 것이다. 그 녹색은 무엇의 선택일까?
그 주범인 엽록소(a,b)는 청색광(약 430-450nm)과 적색광(약 640-680nm)의 영역을 강하게 흡수한다. 반면 녹색광(약 500-560nm) 영역은 상대적으로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하거나 투과시키면서 우리 눈에 도달하게 된다. 즉 초록색은 엽록소가 ‘쓰지 않고 버린 색’인 것이다.
쓰지 않고 버린 색의 시작
약 35억 년 전, 어느 시아노박테리아 계통의 세포막에 자리 잡은 포르피린 고리 하나가 마그네슘 이온을 붙잡은 사건, 그 구조가 우연히 청색광과 적색광 영역의 에너지 준위와 공명했던 사건, 그 두 사건은 상당히 결정론적인 결과(엽록소 분자 구조가 낳은 필연)이면서 동시에 진화사적으로 상당히 우연한 결과(시아노박테리아가 우세종이 됨)이기도 하다. 초록은 필연이면서도 우연인 색깔인 것이다.
녹색이 저지른 재앙과 축복
시아노박테리아가 지구에 초록을 입히기 시작했을 때, 광합성의 산물인 산소는 당시 대부분을 차지했던 혐기성 생물에게는 맹독이었다. 산소는 대기 중에 누적되면서 지구 역사상 최초의, 가장 철저한 대량 멸종을 초래한다. 더불어 그 재앙은 오존층을 만들어 냈고, 바다를 벗어나 육지로 올라오는 생명을 보호했기에 우리를 포함해서 녹색의 새로운 생물권을 만들어 냈다.
산소 대기는 육상 생물의 등장만을 가능케 한 것이 아니다. 지구 자체를 바꾸었다. 철을 녹슬게 하여 철광층을 만들었으며 기후를 바꾸어 혹독한 빙하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수억 년이 흐른 뒤 고생대의 거대했던 초록의 나무숲이 리그닌이 분해되지 않은 채 지층에 묻혀 석탄이 되었다. 우리의 눈은 다른 파장에 비해 녹색광 영역에서 가장 예민한 명순응 감도를 갖는다,
나머지의 역설
지구의 녹색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분자의 우연한 형태에 도달한다. 그 우연은 대량 멸종과 오존층과 철광석과 인간 문명의 기반을 차례로 만들어 낸다. 여러 언어와 전통에서 녹색은 생명, 재생, 안정, 성장과 결부된다. 그러나 그 연상 자체가 견고한 실체가 있는가? 애초에 흡수되지 않고 반사해 버린 빛, 광합성이 필요로 하지 않았던 나머지일 뿐이라는 것이 가장 편안한 색으로 느끼는 아이러니는 어찌해야 하나? 아마도, 가장 많은 빛이니 편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엽록소 포르피린 구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