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신의 두 얼굴 이해하기(굴지성, 굴광성)

줄기는 위로 빛을 향하고, 뿌리는 땅속 아래로 파고든다. 나무의 대칭적인 이 몸짓은 어떤 지혜를 품은 것처럼 여겨진다. 위로는 빛을 아래로는 물과 양분을 향하는 조율된 것 같은 이 굽음이 정확히 하나의 호르몬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다른 무언가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옥신의 두 역할

옥신은 줄기 끝, 생장점, 잎 등에서 만들어져 아래 방향으로 향한다. 즉 중력이 당기는 방향이다. 줄기에서든 뿌리에서든 이 분배는 같다. 결국, 아래쪽에 더 많은 옥신이 쌓인다. 아래로 향하는 옥신의 방향성에 맞는 말이다. 그래서 줄기에서는 그 옥신이 쌓인 쪽에서 생장이 촉진되어 줄기가 위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뿌리에서는 옥신이 쌓인 쪽의 성장이 억제되어 뿌리가 중력 방향으로 휜다. 같은 신호가 한쪽은 촉진으로, 다른 쪽은 억제로 읽힌다.

이 말, 즉 촉진과 억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부정확하다. 옥신 자체는 어디서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인 조직이다. 즉 줄기에서는 신장을 밀어붙이고, 뿌리에서는 신장을 억누르게 되어버리는 것.

조율된 두 개의 카메라

같은 빛의 양이 필름 위에 떨어져도, 감광도가 낮게 맞춰진 필름에는 그 빛을 온전한 상으로 담아내고, 감광도가 지나치게 높게 맞춰진 필름에는 같은 빛에 하얗게 날려버린다. 애초에 다르게 세팅된 것이다. 줄기에서는 옥신이라는 빛을 적절하게 노출된 신장으로 현상하고, 뿌리에서는 같은 양에 과다 노출된, 억제된 상을 만들어낸다. 무언가 쌓여서 넘친 것이 아니라, 다른 감도로 조율된 두 대의 카메라가 놓여 있는 것으로 비유된다.

문제는, ‘왜 하필 뿌리는 다른 세팅 값을 가지게 되었는가.’이다. 진화는 이 특정한 비대칭을 왜 선택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것은 메커니즘일 뿐이며 옥신이 세포벽 합성을 촉진해 아래쪽 세포벽을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성장을 막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이다.

굴지성과 굴광성의 관계

더 나아가, 굴광성과 굴지성은 애초에 다른 감각 기관이다. 빛을 감지하는 것은 포토트로핀이라는 청색광 수용체이고, 중력을 감지하는 것은 세포 안에 가라앉은 전분립이다. 이 둘의 관계를 보면 빛이 없는 곳에서 줄기는 위쪽으로 자라려고 하고, 이 음성 굴지성을 고정값으로 놓고 굴광성(포토트로핀이 광량 구배를 인지하여 빛이 있는 반대쪽(어두운 쪽)에 옥신을 재배치, 그늘진 쪽에 몰아줌으로 성장이 촉진되면서 빛을 향한 방향으로 휨)으로 미세 조정받는 것, 즉 균형점을 찾는 관계로 보인다.

살아남는다는 것

즉 줄기에서 옥신은 생장 촉진이라는 기존의 역할에 굴지성이든, 굴광성이든 충실하고, 다만 뿌리에서는 다르게 세팅되어 정반대의 결과를 낸다. 어떤 통합된 설계나 조율이 있는 것이 아니고 조직에 정해진 농도 또는 민감도가 다를 뿐이다. 이 차이가 나무 전체에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수렵했다는 사실은, 그저 살아남은 조합이 우리 앞에 있다는 사실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옥신과 굴지성, 굴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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