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암수가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봄에 꽃을 피운다. 벚나무처럼 암술과 수술이 한 송이 안에 있든, 버드나무처럼 다른 나무에 따로 피든, 이 구조는 하나의 사실로 수렴한다. 크고 움직이지 않는 배우자 하나와 작고 수가 많은 배우자 여럿. 이 이분법은 나무가 발명한 게 아니다. 나무이전에 볼복스(Volvox)라는 초록색 조류가 이미 완성한 난배우자생식을 이어왔을 뿐이다. 나무는 그저 그 틀 위에 화분관을 얹었고, 배주를 암술로 감싸면서 잎을 재프로그래밍해 꽃잎과 수술과 암술로 나누었을 뿐이다.

두 개의 봉우리는 조건에 걸린 필연이다

이상한 것은 이 반복의 규칙성이다. 배우자 크기를 두고 벌어지는 이 규칙은 조류에서 결정된 뒤 굳어진다. 왜 자연은 이 방식을 고집하는가. 이형배우자생식의 진화모델은 필연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원을 많이 실은 배우자와 널리 퍼지는 배우자, 이 두 사이에 중간값이 없다. 중간은 도태된다. 남은 것은 두 개의 봉우리뿐이다. 그런데 이것은 순전히 산술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즉 성이 둘인 것은 역사적 흔적이 아니라 배우자 자원배분이라는 최적화 문제가 독립적으로 여러 계통에서 반복적으로 도달하는 수렴에 가깝다는 것이다.

반면 균류는 이 틀에 붙잡히지 않았다. 배우자의 크기가 애초에 같기에 자원과 확산에 트레이드오프가 없다. 수천 가지 교배형이 나타나는 이유다. 즉 두 개의 성이 우주적 법칙이 아니라 조건부 결과라는 것이다. 배우자 크기 차이라는 조건이 걸리는 순간에는 두 극단으로 갈릴 수밖에 없다.

해법의 누적된 결과물

난배우자생식(난자+정자)을 이미 완성한 조류는 육상진출(선태식물, 이끼류)과 함께 난자를 모체 보호막 안에 감싸는 구조를 만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포자가 배주 안에서 발아하여 자성배우체가 되고, 그 안에서 난세포가 만들어지며, 정자가 편모로 헤엄치는 대신 소포자가 화분관을 통해 도달하는 화분관 수정이 가능해지는 웅성배우체로 발달한다. 이는 배주가 노출된 겉씨식물로, 배주가 자방 안에 봉합된 구조인 속씨식물로 이어지고 수술이 화분을 만드는 기관으로 특화된다. 각 단계는 물리적 제약이 완화된 변이가 누적된 결과일 뿐이다.

필연으로 시작해 관성으로 어어진다

나무를 들여다보면 마주치는 것은 근본적인 자유도 감옥도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조건이 걸리면 경로는 하나로 좁혀진다. 누구의 의도도 아니다. 단지 여러 층위에서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그 반복은 몇억 년의 시차를 두고 조류에서 나무로 건너온 것을 두고, 필연이라 부를 수도, 관성이라 부를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부르든 나무는 그 답을 준 적이 없다.

#잎의 구조(피자,나자)

관련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