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엽수림의 활엽수림으로의 천이 안에 숨은 의미 찾기

산불이 지나간 자리, 혹은 벌목으로 벗겨진 비탈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리는 것은 대개 양수인 침엽수다. 씨앗이 가벼워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지며, 척박지의 땅에서도 잘 견디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곳의 첫 거주자가 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만든 그늘 밑에서는 자식을 키우지 못한다. 소나무 유묘는 그늘을 견디지 못하는 종이다. 반면 참나무류는 그 그늘에서 수십 년을 버티며 자라서는 끝내 하늘을 가리고 있던 소나무의 자리를 대신한다. 이처럼 자연적으로 침엽수림이 활엽수림으로 바뀌는 과정을 생태적으로 천이(遷移)라 부른다.

소나무의 사다리 걷어차기

그럼 소나무는 실패인 걸까?. 그것은 패배라기보다는 자기 존재 방식에 내장된 구조적 귀결로 보인다. 소나무는 척박함과 빛을 요구하는 종이다. 자신이 자라 숲을 이루는 순간, 스스로 그늘을 드리우고, 토양을 비옥하게 하며, 그 결과 자신의 생존 조건을 없앤다. 자멸처럼 보이는 이것은 유효했던 것이 그 유효함으로 인해 스스로 조건을 소진시킨, 즉 목적을 달성한 순간 사다리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비트겐슈타인의 사다리를 떠올리게 한다.

침엽수의 트레이드오프

빠르게 자라는 능력과 그늘에서 버티는 능력은 동일한 생리적 자원 앞에서 경합한다. 빛이 많은 곳에서 빨리 자라려면 잎이 얇고 넓어야 하고, 호흡률이 높아야 하며 생산된 탄수화물을 즉시 생장에 투입해야 한다. 반대로 그늘에서 버티려면 잎이 두껍고 수명이 길어야 하며 호흡률을 낮춰 적은 빛으로도 손익분기를 맞추고 비싸게 생산된 탄수화물은 비축해야 한다. 이두 생리적 작용은 양립할 수 없다. 즉 소나무의 그늘에서 죽은 성질은 결함이 아니라 빈터에서 누구보다 빨리 자라는 성질을 선택한 것이다. 두 극단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것은 어렵다.

소나무가 선택한 전략의 이점은

소나무가 참나무로의 천이는 한 임지, 한 세대를 기준으로 관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연계 전체와 시간 축이다. 산불, 산사태, 도복, 병충해, 벌채와 같은 교란은 자연계 어디선가 계속 일어난다. 즉 소나무의 전략은 ‘이 자리를 지킨다’가 아니라 ‘어딘가에 새로 열리는 빈터를 누구보다 먼저 차지한다.’이다. 가벼운 씨앗을 대량으로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언젠가 활엽수에 넘어갈 것을 ‘전제’하고 가진 자원을 다음 빈터를 찾는 데 쓰겠다는 것이 소나무가 선택한 일이다.

우연한 일치 혹은 불일치

나무의 안쪽을 보면 비슷한 대비가 반복된다. 침엽수의 가도관과 막공은 단순하고 좁아서 물을 옮기는 효율은 떨어진다. 그러나 그만큼 계절변화에 따른 공동화 현상으로 위험을 맞이할 가능성이 작다. 그에 비해 활엽수의 도관과 천공은 굵고 효율적이지만 위험 요인이 된다. 하나는 느리되 잘 버티고, 하나는 빠르되 쉽게 망가진다. 어느 쪽이 나은 설계인지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설계에 마주치는 조건과 우연한 일치 혹은 불일치가 있을 뿐이다.

마침표가 없다.

천이는 숲이 어딘가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선구종에서 극상종으로, 참나무 숲이 소나무 숲보다 완성된 상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도착점은 없다. 다음 교란이 오기 전까지 잠정적 평형일 뿐이다. 산불이 다시 나면, 병이 들면, 벌목이 있으면 극상종은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소나무재선충이 소나무 조림지를 쓸어버리거나, 우리가 심었던 나무(치산녹화 시절 속성수로 식재된 리기다소나무)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처럼 숲과 자연은 스스로 그 경계를 흩트린다. 결국 천이에 마침표도, 최종 단계도 없다. 있는 것은 다만 교란의 빈도와 그 빈도에 맞춰 되풀이되는 순환, 조건의 우연한 불일치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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