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반짝이는 아침입니다.
나뭇잎도, 아스팔트도, 사람까지 쨍하게 다가옵니다.
파랗게 맑은 하늘은 거울입니다.
그런데 그 거울 속에 심상한 세상은 없습니다.
긴팔 티가 들어있는 서랍장을 당겨 하나를 만지작거리다 그냥 닫고 말았습니다.
더위에 지쳤던 기다림이 고집을 피웠던 아침입니다.
얇은 재킷 안으로 들어와 맨살에 와닿는 서늘함이 부드러웠습니다.
어제는 동료들과 식사를 위해 걷다가 산책길 바깥으로 꽃대를 드러낸 꽃무릇을 발견했습니다.
유심히 둘러보니 꽃대가 여럿 보였습니다.
꽃무릇은 9월 중순을 지나면서 꽃대가 솟아올라 붉은 꽃을 피웁니다.
1~2주 후 꽃이 지고 나면 꽃대 자체도 시들어 사라집니다.
그 자리에 잎이 새로 돋아나 자라서는 이듬해 봄까지 잎을 유지하다가 떨어져 사라집니다.
그 후 땅속에서 두세 달을 침묵하다가 꽃대를 다시 세우죠
상사화처럼 잎과 꽃은 절대 만나지 못합니다.
식물학에서는 ‘이형시기성’이라 부릅니다.
구근식물의 흔한 생태적 방식입니다.
상사화는 물과 빛이 충분한 봄철에 잎을 내서 광합성을 몰아서 하지만 꽃무릇은 꽃을 떨군 후 잎을 내서 한겨울 잎을 유지합니다.
겨울의 혹독함 속에 오히려 경쟁 없이 빛을 한껏 누리는 겁니다.
그렇게 충분한 당분을 알줄기(구근)에 저장하고, 고온과 건조, 잡초와의 경쟁이 심한 여름이 오면 스스로 지상부를 정리합니다.
그해 가을, 구근의 휴면이 풀리고 꽃대가 저장된 자원으로 솟아오르고 꽃이 피는 거지요
상사화는 잎이 먼저, 꽃이 나중이라면,
꽃무릇은 꽃이 먼저 잎이 나중 이런 식인 거죠
조사하다 확인한 또 하나의 사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꽃무릇은 삼배체라 씨앗을 맺지 못합니다.
저장된 자원을 통째로 태워 피우는 붉은 꽃인데, 다음 세대로의 결실로 이어지지 않는 거죠.
번식은 오직 비늘줄기가 갈라지는 무성생식뿐입니다.
가을마다 붉게 뒤덮은 장관은 셀 수 없는 많은 개체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복제된 하나의 패턴에 가까운 거죠.
결국, 꽃무릇의 붉은 꽃은 강렬하게 소비하고 마는 헛헛함에 가깝습니다.
가을이 이렇게 다가옵니다.
오늘은 스스로 결실을 보지 못하는 꽃무릇의 붉은 헛헛함을 대신해서 기억하고 적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인왕산에 잠시 올랐는데 햇볕이, 바람이, 만나는 사람들이 가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