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목의 우아함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장수동 은행나무를 마주하면 우선 그 웅장한 자태와 우아함에 압도된다. 나무를 찾은 그 날도 어김없이 묵직하게 한 대 얻어맞은 듯, 고개를 젖히고 나무를 보았다. 아직은 짙은 녹음에 물든 잎들이 수양버들처럼 늘어진 가지들을 감싸고 있다. 우리는 이 모습을 우아하다고 말한다. 800년 풍파를 견딘 운치 있는 수형이라고.

처진 가지

나무의 가지는 대개 줄기를 비스듬한 각도를 유지하며 자란다. 위로, 혹은 옆으로.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사정이 달라진다. 가지 자체의 목질량이 늘고, 해마다 새로 돋는 잎의 무게가 그 위에 쌓인다. 젊은 가지는 이 무게를 탄력으로 버티지만,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면 매해 반복된 하중이 누적되어 처진 상태에 도달하고 굳어진다.

그렇게, 장수동 은행나무는 800번의 봄마다 새잎을 내고, 800번의 가을마다 그 무게를 다시 감당하는 일을 반복해 온 결과, 가지 끝이 더 이상 위로 향할 여력을 잃었다. 우아한 모습 속에 숨은 처짐은 매년 새로 발급받은 청구서이고, 그것을 매년 갚음으로 다음 해를 맞이해 온 것이다.

위치의 이력

이 나무는 만의골 입구, 소래산과 관모산 자락에 홀로 자리한다. 주변에 경쟁할 상대가 없었다. 덕분에 마음껏 가지를 뻗을 수 있었고 누구도 그 끝을 자르지 않았다. 800년의 하중이 지금껏 쌓일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무의 개성 이전에 위치의 이력이다. 거기에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다. 매년 열매를 매달아야 하는 것은 작은 지출이 아니다. 이 나무가 800년째 가지를 늘어뜨릴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것은, 한 번도 받지 않았을 이 청구서의 몫도 있을지 모른다.

서사의 재구성

마을 사람들은 오랜 세월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이 나무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가지가 점점 아래로 처지고 변해가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다. 나무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감각으로 알았을 것이고 두려움을 낳았을 것이다. 두려움은 금기를 만들기에 충분하다. 잎도 가지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은 어쩌면 절박한 심정에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잎과 가지를 집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가져왔고, 거기에 ‘장수와 인재를 맞바꾼 이야기’는 건드리지 말라는 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나무가 이렇게 오래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서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 쪽에서 무언가를 내준 것처럼 이야기를 재구성했을 것이다.

다시, 고개를 든다.

다시 고개를 든다. 가지 끝은 여전히 아래를 향해 자라고 있고, 800년째 같은 무게를 견디는 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깊어질지, 언제 이 하중이 더는 감당되지 않는 지점에 이를지, 누구도, 나무 자신도 알지 못한다. 이번 겨울 모든 잎이 떨어진 모습을 꼭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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